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서양 철학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년)는 서양 철학의 기본 틀을 마련함으로써,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서양 철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주제로 수많은 철학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직접 저술한 저서는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제자 플라톤이 저술한 '대화편'에서 그의 사상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핵심적으로 1.'지식의 탐구', 2.'덕(德)과 행복', 3.'변증법적 대화', 4.정의와 국가, 5.철학자의 요약으로 정리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어린시절>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69년경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소프로니스코스는 석공이었으며, 어머니 파이나레테는 조산원(산파)이었다. 따라서 그는 비교적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기록에서는, 소크라테스도 젊은 시절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조각을 배웠다고 한다. 그가 만든 조각 작품이 있었다고도 하지만, 정확한 증거는 없다.
어린 시절 그는 아테네에서 제공하는 일반적인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아테네 소년들은 문법, 수사학, 음악, 체육 등을 배우며 시민으로서 필요한 소양을 익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추후 행적을 보았을 때, 일반적인 학문보다는 철학적 사고와 논리적 탐구에 강한 흥미를 보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젊은 시절의 소크라테스는 체육 훈련도 받았으며, 나중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 군인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이때 그는 용기와 인내심을 발휘하며 뛰어난 군인으로서 활약했다고 한다. 특히 포툴라이아(포텔라이아) 전투에서 그의 용맹함을 떨쳤다.
<소크라테스의 사상>
1. "너 자신을 알라" - 무지의 지(知)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인간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존재가 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탁에서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자는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를 자신이 무지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혜롭다고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았다. 즉, 진정한 앎이란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배움을 추구하는 자세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2. 덕과 행복의 관계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또한 덕과 행복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는 "덕(아레테, ἀρετή)이란 곧 지식"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선을 아는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선을 행할 것이므로 악행을 일삼는 사람은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앎을 통해 선한 삶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이처럼 후대의 윤리학,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3. 변증법적 대화(문답법)
소크라테스의 사상의 핵심은 문답법(변증법)에 있다. 그는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사람들과 대화하며 기존의 신념을 검열하고, 모순점이 있다면 찾아내어 해소함으로써 보다 깊은 진리를 추구하고자 했다. 후에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대화법(문답법)을 설명할 때, "산파술(μαιευτική, 마이유티케)"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는데 이는 아마 그의 어머니가 조산원이었다는 사실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게 돕는 것처럼, 자신은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사상을 태어나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문답 과정은 상대방이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고 신규 지식을 찾아 나서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서,
소크라테스의 사상의 핵심을 이룬 문답법은 오늘날까지도 교육에 빈번히 사용되는 방법이다.
4. 정의와 국가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정의로운 국가와 사회의 역할에 대한 의견도 포함하고 있다. 이는 플라톤의 저서 '국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정의란 각자가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민주정이 가지는 한계를 지적하며, 다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님을 주장했다. 그는 진정한 지도자는 단순히 대중의 지지를 받는 것을 넘어 지혜와 덕을 갖춰야 할 것을 강조했다. 이같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그의 제자 플라톤의 철인왕(哲人王) 개념으로도 발전해나갔다.
5. 철학자의 역할과 사회 비판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철학자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내포하고 있다. 철학자는 단순한 지식인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그 역할로서 사회의 잘못을 비판하고 개선하는 것을 제시했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도덕적 성찰을 촉구하고 기존의 관례와 신념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소크라테스에게는 수많은 적이 생겨나게 되고, 나중에 그가 재판에 회부되는 데 까지 영향을 미쳤다.
<정리>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여러 사람의 삶에 귀감을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최후는 아름답지 않았다. 신을 능멸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아테네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처럼 억울한 판결에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악법도 법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독배를 들이켰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다행히도 그의 제자인 플라톤을 통해 계승될 수 있었으며, 이후 서양 철학의 토대가 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고민하며 시작되었다. 그 결과,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비판적 사고와 윤리적 성찰의 본보기로 남아 있다.